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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전 <틈 속의 우연> 작업 노트 2015
 구이진 /  20150421 
작업과 작업 사이에서

지난 작업들을 돌아 보니 작업과 작업 사이에 틈들이 보인다. 하나의 사이클이 끝나고 새로운 사이클이 시작되기까지의 틈에서는 다른 것들을 생각하게 된다. 틈을 단순한 공백이라고 볼 수는 없다. 틈은 고유한 성격을 갖는다. 그 성격은 지속되는 것들의 반복과 변화된 차이들이 한데 뒤섞이며 형성된다. 여기서 발생하는 여러 만남들을 거치면서 어떤 것들은 남고 어떤 것들은 사라진다. 어쩌면 틈에서야말로 작업의 전체 과정 중에서도 가장 다양하고 활발한 활동이 일어난다고 볼 수 있다. 거기서 예측하지 못했던 어떤 우연과 접속되고 그것과 어떻게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다음 행로의 방향과 성격이 결정된다는 사실은 말할 필요도 없다.

각 사이클들의 명확한 개성이 드러나는 것은 물론 서로 다른 차이에 의해서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들을 관통하며 연결하는 동일성이 없다면 창작의 정체성은 애매해진다. 계속되는 변화 속에서 변하지 않는 어떤 것을 아마도 스타일이라 부를 것이다. 그러니까 스타일이란 끊임없는 변화와 차이를 포함하면서 유지되는 동일성을 일컫는다. 스타일은 분명 내 몸 어딘가에서 나오지만, 반드시 외부에서 주어지는 우연을 통해 드러난다. 우연이란 자아의 예측이나 기대 밖에서 발생하는 모든 것을 뜻한다고 본다면, 스타일이란 당사자가 의식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가 미처 알지 못하는 것에 의해 발견된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 스타일에서 자아의 범주를 벗어나는 자신을 발견한다. 자기가 알지 못하는 자기인 셈이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어떤 작가가 자신의 스타일을 잘 안다고 하는 것은 무지에서 비롯된 거짓말일 확률이 높다. 그러니 발견을 위해서라면 지나간 사이클을 설명하기 위해 끌어냈던 생각과 의도들을 계속 고수하며 이어가려는 의지보다, 틈 속에서 새롭게 마주치는 우연들에 집중하는 편이 낫다. 하지만 습관에 연연하는 한 이것은 결코 해내기 쉽지 않은 일이다.

예를 들자면 이미 익숙해진 방식으로 다음 작업을 구상하려 했던 어느 날 당황스럽게도 한 무리의 새떼가 느닷없이 그림 안으로 날아드는 이미지를 감각했던 기억이 있다. 그 이전에 새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가진 일이 단 한번도 없었음에도 말이다.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이 사건을 무시하지 않고 받아들이겠다고 의지하면서 거기에 새로운 틈이 생겼다. 새의 이미지가 갈라놓은 틈 속으로 새로운 우연들이 비집고 들어온다. 이런 우연들을 충분히 이해하는 일이 불가능함을 알면서도 그렇게 해보려고 애쓰는 것, 그러다가 실패를 맛보고서도 다음 우연을 기꺼이 기다리는 것, 그리고 이런 일의 반복에 피로해지지 않고 결국 즐기게 되는 것, 그것이 곧 작업의 핵심인지도 모른다. 이런 창작이라는 과정을 통해 나는 삶의 어떤 과정을 경험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거칠게 말하자면 그것은 우연과 관계 맺기, 내가 아닌 나와 관계 맺기, 내 의지와 상관없이 진행하는 내 삶과 관계 맺기 연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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