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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전 '사소한 신화; 당나귀가 된 소녀' 작업 노트
 구이진 /  20140608 

‘사소한 신화’라는 이야기


   누구나 지금은 도저히 답할 수 없지만 놓아버릴 수도 없는 질문 혹은 수수께끼들을 가지고 있다. 그게 무엇이건 당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끌어안고 지내는 일은 불편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멍하니 일상을 지내다가도 어느 순간 쿡 찌르며 정신 놓지 않게 하는 그런 것을 품고 있다면, 그 불편함은 저주라기보다는 오히려 다행인지 모른다. 나와 내 수수께끼들 간의 불편하면서도 다행스러운 갈등에 처음부터 신화라는 거창한 말이 개입했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 말이 끼어들게 되면서 놀랍게도 우리 사이에 일말의 이해가 찾아왔다. 하지만 단어가 지닌 거대함이 부담스러워서 나는 일단 그들을 사소한 신화라고 부르게 되었다.  

   아직 온전히 이해하거나 화해하지 못한 수수께끼들을 담아 놓고 지켜보기에 이야기 만한 그릇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야기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매력적인 점은 갈등이건 트라우마건 일단 이야기로 풀어낼 수 있다면 어느 정도는 견딜 만한 무언가가 된다는 사실이다. 수수께끼를 이야기에 담아 내어 시간과 관심을 들여 지켜본다면 꼭 필요한 말들이나 이미지들이 언젠가는 다가 온다고 나는 믿는다. 설령 상투적인 이야기에서 시작했다 할지라도 그렇게 해서 결국에는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도저히 설명되지 않거나 받아들이기 어려운 삶의 어떤 부분을 외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여러 형태의 이야기는 필요하다.

   우리 모두는 각자에게 가장 절실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거기에 새로운 부분이 더해지고 더 이상 필요 없는 낡은 부분은 떨어져 나가는 과정을 따라가며 이야기들은 느리게 변주된다. 그러다가 이전의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던 어떤 타인의 이야기가 사실은 애초부터 나와 연결되어 있었음을 알아차리는 것, 여기서 개인의 신화가 감지된다. 신화적 요소는 개인의 이야기가 자아의 울타리 안에 고립되지 않게 하는 하나의 미세한 연결고리가 된다. 하지만 나직한 목소리의 사소한 신화를 읊조리기에 너무 시끄러운 세상이다. 그런 내향적 요구는 거의 허영처럼 느껴질 지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뭇거리며 이 이야기를 계속 하려는 이유는 그것이 사람 속 깊은 곳에 묻혀 있으면서 수많은 타인들을 연결하고 있는 일종의 뿌리 같은 ‘자연’을 드러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시간이 갈수록 그런 자연이 궁금하다. 그래서 그 어떤 사소한 신화도 사소할 수 없다.

구이진,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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