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gene K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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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잡지 2011년 2월호에 실린 인터뷰
 구이진 /  20110902 
마음까지 얼릴 듯한 추위가 기승하고 있는 날들의 연속이다.
연일 기록적 한파에 몸과 마음마저 지치고 웅크리게 되는....
그런 에디터의 마음을 알아챈 듯, 환한 미소로 따뜻하게 맞아준 구이진 작가와의 뜻 깊은 담소는 더 없이 따뜻하고 기분 좋은 시간이었다.
친숙한 동화에서 느껴지는 특별한 장면들 속에 일상에서 느끼는 이야기가 더해져 자신만의 색으로 새로운 이야기로 들려주는 그녀에게서는 그녀만이 오로라가 품어져 나오는 듯 했다.
성급히 서두르지 않고 조급해하지 않으며 한발 한발 천천히 자신의 길을 가는 그녀의 그림 이야기를 들어본다.
에디터 / 최연숙

작품 활동을 시작한 동기
저는 다른 계열의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미술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신중하고 검이 많은 편이라 그랬는지 진로 결정을 비롯해 여러 가지 고민이 많은 20대 시절을 보냈는데, 우여곡절 끝에 미술대학이란 곳을 가게 되었고 내 길을 칮은 거라고 기대했지만 그건 또 한 번의 시작일 뿐이었습니다. 학교에서 알게 된 미술은 제가 생각하던 그림그리는 일과는 큰 차이가 있었어요. 풍성하게 주어진 자극으로 행복하기도 했지만 그만큼 내면의 혼돈도 컸던 시간을 보낸 후 결국 저 자신이 '미술'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고민의 원점으로 돌아온 제게 남은 또 하나의 출구는 '책'이었어요. 우연히 도서관에서 외국 그림책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 경험은 서서히 그림을 진지하게 생각하도록 이끈 동기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아티스트 북'이라는 장르를 알게 되어 뭔가를 찾으리라는 기대로 런던에 있는 대학원을 찾아 갔어요. 그런데 학교에서 시도하는 개념적인 접근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습닏. 대신 런던이라는 문화적 보물창고 곳곳에 흩어져 있는 미술관과 갤러리들을 실컷 즐기며 가난한 부자로 살았지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제가 미술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얼마나 편협한 허상이었는지 깨닫게 되었어요. 어느 날 전시를 보다가 심장이 걷잡을 수 없게 뛰는 걸 느꼈어요. '도대체 내가 왜 그림을 그릴 수 없지?' 자신의 편견으로 인한 두려움이었어요. 그때부터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작품을 추구하는데 남다른 작업 방식은?
일부러 추구한 건 아니지만 제 그림에는 항상 이야기들이 배경으로 깔려 있어요. 아마 어렸을 때 그림을 만나고 크게 매료되었던 계기들이 주로 애니메이션이나 그림책을 통해서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제가 미술대학을 다닐 때는 그림 그리기가 약간 시대에 뒤떨어지는 작업처럼 여기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게다가 이야기 그림이라니 별로 격려받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미술학교 다니는 내내 고민에서 헤어 나오지를 못했었지요. 그러나 도저히 떨쳐낼 수 없는 기질이라는 게 있는 것 같습니다. 몇 년 동안 그림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왔을 때에도 이야기들은 저를 떠나지 않았거든요. 내 일인데도 도대체 왜 그런지 몰라 한참 곰곰이 생각해야만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등장하는 인물에 관한 이야기
제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이야기 속의 인물이면서 제 일상 속의 인물이기도 합니다. 필요에 따라 친구가 모델이 되어 주기도 하고, 잡지를 뒤적이다가 만나게 된 사진 속 인물이 모델이 되기도 하지요. 좀 더 최근에는 어린 소녀의 이미지가 많이 등장하게 되었는데 그들은 생물적 의미의 어린이들이라기보다, 한 사람이 온전한 성인으로 성장하는 것을 보류시키는 일종의 심리적 내면 아이들입니다. 이 아이들의 존재를 긍정이나 부정 어느 쪽으로 판단하는 것은 아니고, 일단 있는 그대로의 자기 상태를 받아들이려는 시도였습닏. 미숙하고 불안하지만 나름의 가치과 사랑스러움을 지니고 있는 존재들입니다.

가벼워 보이지 않는 파스텔적 색감이 인상적입니다. 색에 대한 생각을 들려주세요.
역시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저는 기질적으로 새 것보다 오래되고 낡은 것들을 좋아합니다. 생생한 원색 보다는 시간에 바래서 약간은 누렇게 변색되었거나 탈색된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채색을 할 때 튜브에서 짜낸 물감을 그대로 쓰기보다 항상 몇 가지를 섞어서 채도를 떨어뜨리는 편입니다. 그래야 제 색깔 같아서 마음이 편해지거든요.

작업할 때 어려운 점은?
창작 작업을 한다는 것에는 거의 모든 결정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습니다만 그건 동시에 큰 어려움익도 합니다. 다른 어떤 누구도 내가 이 일을 계속 해야만 하는 확실한 이유를 가르쳐 주지 않으니까요. 때로는 정해진 일정에 맞추어 일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스스로 일정을 마들고 스스로 동기 부여를 해서 추진력을 갖추어야 하는데 결과에 대한 어떤 보상도 약속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일을 꾸준히 지속해 나가는 것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때때로 '내가 이 일을 계속 해야만 하는 이유가 뭘까?"라는 질문이 다가오거든요. 그 때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놓치지 않는다면 한동안 계속 나아가겠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어려운 시간을 겪게 되기도 합니다. 좀 더 일상적인 어려움이라면, 독립적인 삶을 위해 필요한 경제력을 갖추기까지 상당한 기다림의 시간이 걸린다는 점도 작지 않은 어려움입니다.

지금까지 그림을 그리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제작년쯤 1년이 넘게 지속되었던 긴 슬럼프 기간이 있었습니다. 때때로 다가오는 여러 질문과 고민들이 몰려들면서 늪 속에 빠져 나름 바닥을 쳤다 싶었던 시간이었는데 그 안에 있을 때는 내 삶에 다름 시간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힘겨웠지만 빠져나온 후 돌아보니 여러 상황상 자연스럽게 다가왔던 일종의 성장통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시간을 보낸 후에 가장 의미 있는 변화는 똑같은 일상이 좀 더 즐길 만해졌다는 것과 그림 그리기를 계속하고 싶다는 의지가 더욱 견고해졌다는 점이거든요. 자신의 선택을 조금 더 믿고 존중해 주게 된 거죠.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작업도 무척 매력적이지만, 그림과 이야기를 동시에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자연스럽게 언젠가 그림책을 만들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전에 그림책을 만들겠다는 욕심으로 어린이 그림책을 만들려고 시도한 적이 있었어요. 결국 실패한 후에야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은 현재 살아가고 있는 삶의 온갖 정소를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내 그림과 글을 통해 말을 건네고 즐기고 격려하는 일이라고 확인했어요. 진행 중인 회화 시리즈를 끝낸 후에는 '젊은 어른'을 위한 그림책 작업을 시작하게 될 것 같습니다. 구체적인 내용 구상은 진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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