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gene K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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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손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구이진 /  20110902 
미술과 패션을 테마로 한 글쓰기와 강연을 하는 김홍기씨가 쓴 책 '하하 미술관(2009)' 에 실린 내 그림 '손' 시리즈에 대한 에세이


며칠 전 사진기자인 후배가 보내준 사진을 보고 있습니다. 분홍색 공갈 젖꼭지를 문 채 평화롭게 잠든 아이의 표정이 곱습니다. 사진 속 아이는 시각장애인입니다. 의료봉사단과 함께 간 사할린 여행에서 포착해낸 고요의 순간에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엄마가 무료진료를 받기 위해 들어간 사이, 자원봉사자가 아이를 껴안아주었습니다. 후배 말을 들어보니, 처음에 보채던 아이가 등에 손을 얹으니 금세 잠이 들더랍니다. 사람이 마음을 껴안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미술에 대한 글을 쓴 지도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미술이란 소재를 블로그란 그릇에 담으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지요. 제 자신의 모습이 변했고, 생의 주변부에도 다양한 그늘과 밝음이 생겨났습니다. 또한 삶과 나를 둘러싼 풍경을 투고하는 시선의 방향도 바뀌었습니다. 미술관을 가는 일이 습관처럼 몸에 배어버린 지금도, 여전히 그림을 보는 일은 행복합니다.
오늘 소개하는 작가 구이진은 참 여렵게 알게 된 화가입니다. 미술대학 교수님의 추천으로 알게 되었는데, 그림을 보고 한눈에 반했습니다.
성인을 위한 동화책과 그림책을 읽을 때마다 각질처럼 굳은 유년의 기억을 떠올립니다. 추억의 보자기를 풀어 글 속에 감추어진 나를 응시하는 일은 이 자리에 서 있는 나 자신을 성찰하고 충격을 주고 잦아 있던 상상력에 새로운 불을 붙입니다. 구이진의 '잃어버린 것들의 정원' 연작은 바로 이런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오래된 모습과 아름다운 기억들, 그거들을 하나하나 이어가는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지요.
구이진의 작업은 동화적 모티브를 중심에 두고 있습니다. 동화 일러스트를 그린 작가답게 아이들의 순수한 눈망울과 파스텔 톤의 색감, 가냘픈 다리, 세부적인 섬세함이 돋보이는 옷의 패텬을 정교한 터치로 묘사합니다.
그러나 그녀의 그림에서 주목할 것은 무엇보다도 아이들을 감싸고 있는 손의 모습입니다. 작가는 그림을 그리는 손에 대해서 고민했나 봅니다. 작업을 하던 어느 날, 그녀는 구호단체 캠페인에서 도와주는 아이들의 모습을 그리게 됩니다. 아이들의 국적은 다양합니다.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라틴아메리카 아이들의 얼굴이 그림에 펼쳐집니다. 아이를 감싸는 손은 모습은 아이들의 눈망울에 투영된 감정의 빛깔과 무늬에 따라 다른 양상을 띱니다. 넓게 시원스레 펼쳐진 손, 수줌게 감싸 안은 손, 조심스레 오므린 손, 마치 그들 등 위에 달린 날개와도 같아 보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수호천사의 날개 같기도 하고, 영혼의 창을 통해서만 보이는 힘처럼 느껴지기도 하지요. 구이진의 그림에서 제가 배우는 것은 아이들을 껴안고 달래고 격려하고 감싸는 손의 기능입니다. 아니, 신이 인간에게 손이란 매체를 준 까닭이라 해야 옳지 싶습니다. 누군가를 때리거나 안거나 밀치거나 잡거나 껴안는 등의 수없이 많은 행위를 창조하는 이 손에 대한 표현은 세상의 모든 배려를 채우고도 남을 만큼 크고 깊지요. 손과 손이 배졉되는 그 시간에 우리가 만들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의 조합은 우리의 삶을 들여다보도록 만드는 거울과도 같습니다.
작가는 8개월 동안 13장의 그림을 완성한 후 필리핀으로 아이들을 만나러 떠났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만난 아이들의 어깨 위에 손이 놓여 있더랍니다. 그 손은 절대자의 손이기도 하고, 후원자의 손이기도 하고, 봉사자와 가족과 이웃의 손이기도 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손의 포개짐, 그 따스한 보호 속, 아이들과 함께 있는 작가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것입니다.
예술가들은 종종 정체성의 위기에 빠집니다. 자신의 그림이 어떻게 세상에 읽힐까 혹은 어떤 기능을 할까, 고민에 빠집니다. 작가 또한 이 그림을 그리기 전, 예술가로서의 자신에 대해 회의와 의심 그리고 두려움에 빠진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자신이 누구 못지 않게 격려와 긍휼을 필요로 하는 평범하고 나약한 아이라는 사실을 배웠고, 그림 속의 아이들처럼 자신이 이미 그런 은혜 속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지요. 구이진은 이 경험을 통해 한 발짝 더 내딛는 작가가 된 것 같습니다. 제게 보내준 작가 노트에 이렇게 쓰여 있더군요.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제가 얻고 싶었던 '유익성'은 그림 자체의 가시적인 쓰임새가 아니라 제가 해나가는 예술의 가치 확인, 곧 제 자신의 존재 가치 확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후로 계속 많은 사건들과 기복이 있었지만 지금은 좀 더 폭 넓은 이해를 통해 많이 회복되었답니다. 이제는 이 아이들 그림을 담담하게, 저 자신의 성장 과정에서 의미 깊은 한 단계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나는 오늘 두손으로 무엇을 했는지, 그냥 제 자신에게 묻고 싶습니다. 한 편의 강의 계획서를 작성했고, 세 번째 인쇄에 들어간 제 첫 번째 책의 수정 사항을 점검해 고쳤고, 뜯긴 옷의 솔기 선을 마장하고 밥을 먹고 물을 마시고 책을 읽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구세군 붉은 냄비에 부족하지만 몇 푼의 돈을 넣었습닏. 껴안음은 자신을 비롯해, 이웃으로 그 외연이 확장되어야 하는 행위입니다. 용기를 내어 누군가를 껴안고 싶은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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